2024-08-19 HaiPress
소박한 루틴에서 얻는 행복
절망도 기쁨도 모두 인생이다
주인공이 매일 필름 카메라로 찍는 ‘코모레비(木漏れ日)’는 일본어로 ‘나무 사이사이 잠깐씩 비치는 햇빛’을 뜻한다. 빔 밴더스 감독의 영화로 주인공 야쿠쇼 코지는 지난해 이 영화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당신의 일상을 충만하게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과묵한 성격으로 고전 소설,분재,올드팝과 필름 카메라 등의 옛 것들로 매일을 반복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 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점심시간에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는다.
퇴근 후엔 목욕을 한 뒤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거나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동료 청소부인 ‘타카시’(에모토 토키오)의 갑작스런 퇴사와 함께 사이가 소원했던 여동생의 딸인,조카 ‘니코’(나카노 아리사)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생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영화는 히라야마의 소소한 일상들로 채워져 있다. 골목길을 쓰는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깨고,이를 닦은 뒤 화분에 물을 주고,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출근하며,단골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누운 채로 스탠드 조명에 의지해 책을 읽다 잠든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의 정열』,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 같은 고전 소설,카세트 테이프로 듣는 올드 팝 등 지금은 사라져 간 ‘옛 것’들이다. 이 단순한 일상이 관객들에게 이상하리만치 안정감을 준다. 영화 속에서 그의 과거는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음악 애호가인 빔 밴더스 감독답게,애니멀즈(The Animals)의 ‘Housing of the Rising Sun’,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니나 시몬(Nina Simone)의 ‘Feeling Good 등 유명한 노래가 가득 등장한다. 특히 패티 스미스,밴 모리슨의 이름은 동료 청소부의 여자친구와,조카인 니코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영화는 히라야마의 꿈에 매일 밤 등장하는 흑백 컬러의 꿈을 통해 뭔가 말하려는 듯 보인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며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들여다보지만 그런 충만한 삶에도 때로 찾아오는 삶의 고통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기쁨과 슬픔,좌절과 절망이 있어도 당신의 인생은 퍼펙트 데이즈일 수 있다는 것. 조카 니코에게 “나중은 나중!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하는 히라야마는 매일 나뭇잎 사이로 햇빛을 찍는다. 그는 사라지는 ‘지금 이 순간’을 필름에 기록하고 있었던 것일까.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영화 마지막,차 안에서 웃는 듯 우는 히라야마의 복합적인 표정 연기가 영화의 모든 것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도 일어나서 나가지 말 것. 영화의 주요 테마를 축약한 ‘코모레비(木漏れ日)’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쿠키영상을 놓칠 수 있으니까. 러닝타임 124분.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글 최재민 사진 (주)티캐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4호(24.8.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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