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가는 꽃, 캔버스에 박제하다

2025-03-11 IDOPRESS

강명희 개인전 '방문-Visit'


멀리서 보면 더 선명한 회화


6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북원'(462×528㎝)

한 사람의 삶이란 끊임없는 이동,영속적인 항해의 여정이다. 인간은 자신이 위치했던 처소에 한 줌의 그림자조차 남기지 못하지만 때로 내면의 기억은 영원한 잔상으로 남겨진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최근 개막한 강명희 작가의 개인전 '방문-Visit'은 잔상으로만 남겨지는 인간의 기억을 사유하기에 적당한 전시다. 물감의 흐릿한 채색만으로 기억을 존속시키려는 작가의 의지가 선명해서다.


1947년생 강명희 작가는 서울대 회화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1972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1986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한국인 최초로 개인전을 개최하며 명성을 얻었는데,그가 온몸으로 남긴 캔버스의 흔적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한때,재회하지 못할 '저곳'들의 기억을 붙잡는다.


2002년부터 8년간 그린 작품 '북원'이 특히 그렇다.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가로세로 5m 남짓한 대형 작품 '북원'이 관객을 맞는다. 어느 날 "한국에서 가져간 물감을 모두 소진하고픈" 생각에 사로잡힌 강 작가는 캔버스를 눕힌 뒤 물감을 발로 짜내며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가 체류했던 프랑스 투렌 지역의 자택 정원에서 직접 풀을 뽑고 식물을 가꿨는데,그 긴 시간 동안 틈틈이 채색해 '북원'을 완성해냈다. 정원의 꽃은 오래전 시들었지만 그날 작가의 동공에 비친 기억은 캔버스 속 영원한 정원으로 박제됐다.


가까이서 보면 형상이 불분명하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명징한 의도가 만져질 듯한 강 작가의 화법은 2013년 작품 '방문Ⅲ'에서 더 깊어진다. 이번 전시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그림은 투렌 정원을 찾아온 꿩과의 우연한 조우 이후 시작됐다. '방문'이란 단어는 이 작품 위에서 일상적 사건과 초월적 순간이 결합하는데,예수를 임신했던 마리아가 세례 요한을 임신 중이었던 엘리사벳을 찾아가 수태고지를 알리는 장면에 가닿는다고 미술관 측은 전했다(누가복음 1장 40절). 존재의 방문은 신의 기적적인 개입이자 일상을 초극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 작가의 '방문'은 그가 평생 세계 여러 지역을 다니며 그렸던 작품 속 주제 전체를 움켜쥐는 단어이기도 하다. 울란바토르,콜린스하버,테를지,바얀작,마젤란해협,페호에 호수,창강누르 등 작가가 일생 동안 다녔던 장소들이 작품으로 남겨졌다. 특히 강 작가는 노벨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와도 깊게 교류했는데,그래서인지 시리아에서 벌어진 전쟁과 폭력을 '검은 튤립'이란 주제로 애도한 '시리아Ⅱ'도 관람자의 눈길을 끈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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