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머릿속에서, 우리는 그 상상의 일부가 된다

2025-06-23 HaiPress

지상중계 김경욱 '너는 별을 보자며'


'덕질'에 빠져 '찐팬' 된 아내와


그 아내의 곁에 선 남편 이야기


인간 상상력에 대한 깊은 질문

김경욱 소설가. 매경DB

소설가 기영과 아내 은하의 이야기다. 은하는 읽지 않은 책이 없다고 여겨질 만큼 다독가였고,끝내주는 영화라도 두 번 보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은하에게 변화가 생겼다. '덕질'에 빠진 것이다.


뻔한 오디션 프로에서 우승한 녀석에게 반한 은하는 같은 노래만 반복해 듣기 시작한다. 음반을 수십 장씩 사고,녀석의 화보를 기영의 책보다 잘 보이는 자리에 둔다. 급기야 콘서트장을 찾은 기영과 은하. '최애'가 생긴 아내를 위해,기영은 콘서트장 맨 뒷좌석에 앉는다.


그런데 기영이 쌍안경으로 은하를 보니,은하는 녀석 대신 기영을 쳐다보고 있다. 그러더니,은하가 자리를 비우고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된 걸까.


김경욱 단편 '너는 별을 보자며'는 이른바 '덕질'에 빠진 아내와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기영의 1인칭 시점의 소설이다.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의 '상상의 재료'가 되며,하지만 그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인데,정작 그 상상이 모든 '나'의 눈앞에 현실화했을 때에는 상상과 현실이 미끄러지고 마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기영이 은하를 만나기 전에도 그랬다. 소설 속 기영이 작가로서 유명세를 얻은 건,은하를 만나기 전에 쓴 소설이었다. 이른바 '미래의 아내'에 대한 소설. 안 읽은 책이나 안 본 영화가 없고 모르는 이야기가 없는 사람. 은하는 기영의 상상 속 인물과 닮아 있었다. 은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적당히 멀리서 봐야만 상대방을 온전의 자신의 상상과 일치시킬 수 있는 것처럼,상상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은하가 무대 위가 아닌 먼 좌석에 앉은 기영을 바라보다 사라진 이유도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장소까지도 그 상상과 유관했다.


소백산 천문대에서,두 사람은 별을 보다 만났다. 별과의 아득한 거리 탓에,지구 위의 우리가 보는 빛은 과거의 빛이다. 현실,현재가 아닌 것이다. 기영에게 은하가,은하에겐 기영이,또 은하의 새 '최애'까지도 전부 상상의 결과일 수 있다. 김경욱 작가는 '상상하는 인간'을 통해 세계와,그리고 세계 속 인간의 관계망이 모두 상상의 결과임을 포착해낸다.


이 소설은 단조롭지 않다. 시간을 교차하고,인물들이 위치한 처소를 전환시킨다. 한 번 읽으면 의미망을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 소설은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두 번,세 번 읽을수록 김경욱 작가가 곳곳에 배치한 의미망이 이 소설의 깊이감을 더한다. 읽다 보면 이런 의문이 불가피해진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상상의 재료일까,난 또 누구를 내 상상의 재료로 삼고 있을까.


심사위원 김미정 문학평론가는 "창작가의 고민이나 팬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생의 민감함에 대한 포착이 느껴지는,그러면서도 뭉근하게 다가오는 매력적인 작품"이라고,강영숙 소설가는 "타인이 모두 다 누군가의 '상상의 재료'가 된다는 부분이 좋았다. 이른바 '덕질'이라고 표현되는 현상에 대해 안정적이고 품위 있게 사유를 이끌어갔다"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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